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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재(茅齋)

광산김씨 유일재종택(光山金氏 惟一齋宗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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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명 모재(茅齋)
  • 글자체 행서(行書)
  • 크기 41.5x72.0x3.6
  • 건물명 모재(茅齋)
  • 공간명 광산김씨 유일재종택(光山金氏 惟一齋宗宅)
  • 서예가
  • 위치정보 안동시 와룡 가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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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재(茅齋)

모재(茅齋)


모재(茅齋)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유일재(惟一齋)종택에 걸려 있던 편액이다. 모재는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 1520~1588)가 1561년(명종 16)에 지은 초가를 말한다. 당시 모재의 모습에 대해서 이광정(李光庭)은 “신해년(1561) 서사(書舍) 여러 칸을 지어 유일(惟一)이라 이름 짓고 생도들을 가르쳤는데, 생도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받아들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생도들이 머무르는 곳을 관선(觀善)이라고 이름 짓고, 합하여 광풍헌(光風軒)이라고 편액하였으며, 그곳 앞의 반 이랑의 못을 파고는 활수(活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모재는 당(堂)과 실(室), 헌(軒)에 연못을 갖춘 강학 공간인 것이다.

제모재(題茅齋)
내 계획이 졸렬해 집 몇 칸도 못 이루어
봄날 집터 닦았는데 추운 겨울을 지났네
겹겹 띠풀 바람에 날려 서까래 드러나고
흙벽돌은 얼어버려 벽이 마르지 않는구나
처마 끝에 달빛은 책상을 밝게 비추고
성근 집에 나는 연기 푸른 산을 두르네
쓸쓸함 비록 심해도 내 오히려 즐거우니
이 몸과 마음 모두가 한가롭기 때문이네


謀拙難成屋數間
開基春日涉冬寒
重茅風散椽全露
塼土冰凝壁未乾
月入虛簷明照榻
煙生疎戶翠連山
蕭條雖甚吾猶樂
爲是身心兩得閒

김언기는 자신의 모재에 대해 위와 같이 시를 지어, 질박하고 검소한 삶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유자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편액의 글씨는 작자 미상이며, 행서로 쓰였다.

글자의 필획이 또렷한데도 하나의 글자는 한 송이 꽃인 듯하다. 예스럽기 보다는 모던하고 그림인 듯하지만 분명한 필획의 글씨임은 틀림없다. 내부간격은 치밀하나 막혀있지 않고 외부 공간이 넓은데도 비어있지 않았다. 창공을 배경으로 피어난 연꽃, 활짝 핀 꽃 옆에 피기 직전의 봉오리가 나란히 있는 연지(蓮池) 풍경이다.

(서예가 恒白 박덕준)

광산김씨 유일재종택(光山金氏 惟一齋宗宅) 소개


유일재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위치한다. 가구리는 구한말에는 안동군 동선면의 지역이었고, 1914년 상가구동, 하가구동, 가장동의 각 일부와 북선면의 태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구동·가구리라 하여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다시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가구리는 와룡면에서 가장 큰 동리로 가구 1리와 2리, 법정리로 나뉘어 있다. 가구 1리는 최근에 조성된 문화마을, 무의, 율리, 감원정마을이고 가구 2리는 가메기, 살앞, 어은골, 미드골마을이 포함된다. 『영가지永嘉誌』에는 ‘다유의관사족지가(多有衣冠士族之家)’라 하여 가구마을은 관원과 사족이 많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구촌이 된 것은 500여 년 전 안선손(安善孫), 안계손(安季孫) 형제가 밤실[栗里]을 개척하고 후손인 동고(東皐) 안제(安霽)가 이 지역이 아름다운 언덕이라 하여 가구(佳邱)라 하였다. 밤실은 순흥안씨(順興安氏) 형제가 개척하였지만 이 마을에는 광산김씨 유일재공파의 종택인 유일재종택이 있다. 이 종택은 와룡면사무소와 유일재 김언기의 묘소가 있는 산동(山洞) 중간 지점에 있다.

광산김씨는 전라도 광산(光山, 지금의 광주시)의 토성으로 고려 후기 왕경에 진출하여 관료를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광산김씨는 문정공파(文貞公派), 문숙공파(文肅公派), 양간공파(良簡公派), 낭장동정공파(郎將同正公派), 사온직장공파(司醞直長公派)의 5개 문파로 나누어진다. 안동 광산김씨는 주로 오천, 구담, 가구 등 세 곳에 뿌리를 내려 세거하였다. 이들은 모두 고려 충렬왕 때 형부상서를 지낸 14세 양간공 퇴촌(退村) 김연(金璉, 1214~1291)의 손자 김진(金稹)이 계승한 양간공파에서 나온 분파이다. 오천에는 김진의 5남인 김천리(金天利)를 계승하는 분파가, 구담과 가야에는 김진의 차남인 김영리(金英利)를 계승하는 분파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오천에는 김효로(金孝盧, 1455~1534)가 예안의 오천에 입향하면서 광산김씨 예안파를 형성하였고, 구담과 가야에는 김영리 계열의 김용석(金用石)이 스승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당한 무오사화를 보고 안동의 구담으로 입향한 뒤 그 손자 김언기가 처가를 따라 오천리 근처의 가야리로 이거하면서 퇴촌공파(退村公派)로 정착하게 되었다.

김언기는 자가 중온(仲昷), 호는 유일재(惟一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인 김용석의 손자이고, 이황과 동방 합격한 김주(金籌)가 부친이다. 모친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풍산현 구담리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을 따라 안동부 와룡면 이계(지금의 이상리)로 이거하였다. 그리고 만년에 와룡의 가야에 집터를 정해 정착하였는데, 1561년(명종 16) 서당 모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하였다. 당시 문도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김언기의 학덕에 대해 이광정은 “복주의 문학 흥성은 선생의 창도에 힘입은 바가 크다.[福州文學之盛 多自先生唱導云]”라고 평가했다. 1567년(명종 22) 생원시에 합격한 뒤로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571년(선조 4) 영해교수로 제수되었을 때 영해 향교의 강당을 수리하고 학교의 규약을 밝히고 학생을 장려하고 인재를 배양하는 등 교육에 힘썼다. 1573년(선조 6) 여강서원을 창건하여 이황을 배향할 때 여강서원의 초대 원장이 되었다. 백담(柏潭) 구봉령(具鳳齡),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지산(芝山) 김팔원(金八元) 등과 교유하며 강학하였다. 비지(賁趾) 남치리(南致利),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 등의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초취부인 영양남씨 남세용의 딸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후취부인 영천이씨와는 2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김득연(金得硏, 1555~1637), 김득숙(金得肅, 1561~1589), 김득의(金得礒, 1570~1625)이다. 유일재종택은 첫째 김득연의 후손이 이어가고 있다. 김언기의 묘소는 와룡산 남쪽 기슭 축좌언덕에 있다. 저술로 2권 1책의 『유일재선생실기惟一齋先生實記』가 있다.

유일재종택은 김도상(金道常, 1778~1840)이 1700년대 말에 구입해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집은 1600년대 말에 건립되었고, 1700년대 말에 김도상의 소유가 되어 이후 내내 유일재 종계의 삶을 담아내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건축물의 구성은 전형적인 口자형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가 정침의 왼편에, 행랑채가 오른편에 배치되고, 안방과 부엌이 정침의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사당은 정침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중앙에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어 있는 口자 구조의 중심 건물이 있다. 사랑채는 口자 구조 중 서남방을 차지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남쪽 반 칸 정도는 마루이다. 자연석을 3층으로 쌓아 올린 대좌 위에 올라앉아 있다. 사랑채의 동쪽으로는 행랑채가 일직선으로 붙어 있다. 사랑채는 마루 영역만큼 행랑채보다 앞으로 튀어나가 있는 모습이다. 사랑채 마루는 양쪽을 벽으로 막고 판자문을 달았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서쪽으로 나 있다. 이 문이 대문 겸 중문의 역할을 겸행한다. 안채는 2칸 넓이의 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방이 마련되어 있다. 서쪽의 방이 안방이다. 아래쪽에 방문이 달려 있고, 위쪽에는 양쪽으로 작은 창문이 달려 있다. 종택은 1996년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김시황, 「유일재 김언기 선생 생애와 학문 및 교육」, 『퇴계학과 유교문화』 제30집,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001.
  • 박종천, 「조선시대 예안 광산김씨의 친족활동 - 계회와 성회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제30집, 한국국학진흥원, 2016.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소장 국학자료 목록집10 광산김씨 유일재종택』, 한국국학진흥원, 2011.
  •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역사관(http://www.ugyo.net/)
  • 문화재청(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