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이씨 암재공파(昌寧李氏 巖齋公派)
창녕이씨 암재공파(昌寧李氏 巖齋公派)창녕이씨(昌寧李氏) 암재공파는 고려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 예의판서를 지낸 후 창산군에 봉해진 이정현(李正賢)의 후손이다. 이정현의 현손 이귀춘(李貴春)은 여말에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포항 장기현 학삼에 은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조선에 들어와서는 이대임(李大任, 1574~1635)이 현달하였다. 이대임의 자는 사중(士重), 호는 죽계(竹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부친은 참의를 지낸 국추(國樞)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동래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방경(徐方慶), 서극인(徐克仁), 이눌(李訥)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장기향교의 오성팔현(五聖八賢)의 위패를 석굴에 피난 봉안하였고, 장기와 경주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사후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고, 학삼서원에 배향되었다. 그의 9대손이 암재 이운기이다. 그의 자는 덕현(德賢), 호는 암재(巖齋), 본관은 창녕이다. 괴재(槐齋) 이인환(李寅煥)과 덕계(德溪) 이정일(李貞一)에게 수학하였고, 1897년 자식 교육을 위해 암재를 지어 학문 수양을 하였다. 또 낙성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모아 『암재창수록巖齋唱酬錄』을 만들었다.
참고문헌- 『안동시사』, 안동시사편찬위원회, 1999.
- <이대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 김윤규, 「『암재창수록巖齋唱酬錄』에 나타난 19세기말 지방 인사들의 한시 창수문화」, 『동방한문학』 62, 동방한문학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