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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주이씨 반계공파종중(密陽 驪州李氏 磻溪公派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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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명 밀양 여주이씨 반계공파종중(密陽 驪州李氏 磻溪公派宗中)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아불2길 4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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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주이씨 반계공파종중(密陽 驪州李氏 磻溪公派宗中)
관련편액 반계정(盤溪亭)

밀양 여주이씨 반계공파종중(密陽 驪州李氏 磻溪公派宗中)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은 시청으로부터 동북 방향으로 15km 떨어진 산간 지역으로 산중의 별구이다. 옛날에는 고을 내의 태산이라 일렀고, 지금은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재약산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북쪽 그리고 남쪽 셋 방향으로 1,000m 내외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그중에 반계정(盤溪亭)이 있는 범도리는 메물산[木麥山]을 등지고 고야천 동편 강가에 자리 잡은 옛 마을이다. 마을 앞에 호수처럼 생긴 깊은 소(沼)가 있어 범도연 또는 도연이라 했으며 마을의 지형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돛단배 같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라 한다. 밀양시 단장면 범도리 마을은 조선 후기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서운룡(徐雲龍)이 이곳에 터를 잡은 후 대대로 달성서씨(達城徐氏)가 살았고, 또 같은 시기에 효행으로 이름난 오정몽(吳禎蒙)이 이거해오면서 해주오씨(海州吳氏)의 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을 남쪽 고례리와의 경계 지점인 박산 중허리에는 옛날 심진암이라는 절터가 있었고, 그 아래쪽에 1916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에 거주하는 여주이씨(驪州李氏) 문중에서 그 선조인 도원(桃源) 이종극(李鍾極)의 소요처라고 하여 도원정(桃源亭)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반계(盤溪) 이숙(李肅, 1720~1807)의 가계는 여말선초의 뛰어난 경세가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 1352~1432)의 후손이다. 이행의 자는 주도(周道), 호는 기우자·백암거사(白巖居士)·일가도인(一可道人)이다. 아버지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천백(李天白)이며,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그는 1371년(공민왕 20)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수찬, 좌간의대부,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예천동에 은거했다가 조선이 건국되고 다시 출사하였다. 이행의 아들 이적(李逖)은 예문직학을 지냈으며, 이적의 아들 이목(李孜)은 양녕대군의 사위로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2대를 내려와서 이사필(李師弼)이 처음으로 밀양에 입향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고, 그 이후 증조부 이장윤(李長胤), 조부 이만성(李萬宬), 아버지 이지적(李之迪)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숙의 자는 유청(幼淸), 호는 반계이며, 아버지는 이지적,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익희(申益喜)의 딸이다. 그는 아버지의 명으로 문암(門巖) 손석관(孫碩寬)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고,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위기지학에 힘을 쏟았다. 그는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관직을 탐하다가 공명길에서 무너지는 것과 타고난 분수를 깨달아 본분을 지키며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대 영남의 석학들과 교유했는데, 특히 죽포(竹圃) 손사익(孫思翼), 태을암(太乙庵) 신국빈(申國賓) 등과 도의지교를 맺었으며, 강좌(江左) 권만(權萬),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 등은 이숙을 몹시 존경하였다. 그는 사랑과 공경으로 어버이를 섬겼고, 사람들과의 교제는 화기애애하여 촌로조차 그를 존경하였다. 그리고 항상 베풀기를 좋아하여 주변에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재산을 내어 도와주었다. 마을에 시비나 소송이 일어나면 바르게 깨우쳐주어 그들 스스로 복종하게 하였다. 만년에는 정각산 아래에 반계정을 짓고 학문에 매진하면서 수양하였다. 그는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88세의 장수를 누렸는데, 82세 때 첨지중추부사의 은전을 받았다. 1807년(순조 7) 세상을 떠나니 향년 88세이다.
한편 반계정은 반계 이숙의 만년 강학처로 1995년에 경남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정자 앞에는 맑은 응천이 흐르고,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맑은 여울이 옥류처럼 흐른다. 북으로는 정각산이 뻗었고 동남으로는 푸른 산굽이가 병풍처럼 둘러 있다. 반계정이 앉은 곳은 천연의 반석이 두르고 있어 은자가 거처할 만한 장수처이다. 정자는 강가 넓은 반석 위에 지어졌는데 기둥을 세우는 주춧돌 등 계곡의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물을 올렸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고종 때 이숙의 5대손 이소구(李韶九)가 건물을 해체·복원한 이후 후손들이 정성껏 관리해오고 있다. 반계정 좌측에는 이숙이 독서하던 별당 반계정사(盤溪精舍)가 있는데, 후손들이 1980년에 복원한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는 살림집인 안채가 있다. 정자 안에는 치암 남경희와 죽리(竹籬) 손병로(孫秉魯) 등이 읊은 「반계정십이경(盤溪亭十二景)」 시판이 걸려 있는데, 남쪽 들판 벼 향기[南郊稻香], 북벽의 기이한 암석[北壁奇巖], 앞 시내 인월[前溪印月], 옛 성의 낙조[古城落照], 각산 다리의 나무꾼 노래[覺棧樵歌], 마을에 뜬 밥 짓는 연기[泛村炊煙], 응봉의 봄꽃[鷹峯春花], 사암의 가을 넝쿨[舍巖秋蘿], 웅연의 저녁 비[熊淵暮雨], 어부의 불빛[漁汀夜火], 문암의 귀승[門巖歸僧], 조록의 방목하는 소떼[竈麓放牛] 등이 반계정의 열두 풍경이다.

참고문헌
  • 남경희(南景羲), 「반계정기(盤溪亭記)」, 『치암집癡庵集』
  • 류주목(柳疇睦), 「반계이공묘갈명(盤溪李公墓碣銘)」, 『계당집(溪堂集)』
    이갑규 외 2인, 『한국의 혼 누정』, 민속원, 2012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1·2』, 한국국학진흥원, 2016
    밀양시청 홈페이지 마을소개
  • (https://www.miryang.go.kr/twn/index.do?mnNo=1060000&owd=dan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