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박씨 판윤공파종중(順天朴氏 判尹公派宗中)
순천박씨(順天朴氏)는 원래 고려 개국공신 박영규(朴英規)의 후손이다. 박천상(朴天祥)은 공민왕조에 무과로 관직에 나아가 판개성부사(判開城府使)를 거쳐 도첨의 시중(都僉議侍中)에 올랐으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해졌다. 문인으로 시를 잘 지어 이름이 알려진 이조년(李兆年)의 손녀를 첫 부인으로 얻고 다시 당대의 최고 권세가의 한 사람인 권겸(權謙)의 외손녀를 둘째 부인으로 얻을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 공양왕 때에 이씨왕조(李氏王朝)를 건국하려는 정치 세력에 의해 윤이(尹彛), 이초(李初)의 사건이 일어나 고려조의 충신들이 대거 숙청될 때 이에 연루되어 아들 박가흥(朴可興)과 함께 투옥되기도 하였다.
박가흥(朴可興)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검교의정부우의정(檢校議政府右議政)의 관직에 이르렀으며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다. 공양왕 때에는 이초의 사건에 연루되어 아버지와 함께 투옥 유배되었으나 정몽주의 강력한 구명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박가권(朴可權)은 박가흥의 아우로 약관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의정부 요직을 두루 거쳐 판개성윤(判開城尹)을 지냈으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견지하며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박가권의 아들 박유성(朴柳星)은 의주목사(義州牧使)를 지냈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한편 박가권의 6대손인 박이장(朴而章, 1540~1622)은 자가 숙필(叔弼), 호가 용담(龍潭) 또는 도천(道川)이다. 1573년(선조 6)에 생원·진사 두 시험에 입격하고, 1586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에 대사간, 병조참판,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가 삭직되어 성주(星州)로 내려가 저술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문장에 능했으며 특히 시에 이름이 있었다. 성주의 청천서원(晴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정종로(鄭宗魯), 「고려판윤박공묘갈명(高麗判尹朴公墓碑銘)」, 『입재집 별집(立齋集別集)』 권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