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신씨 회당공파종중
애당초 단구서원(丹邱書院)에 배향된 인물은 호계(虎溪) 신적도(申適道, 1574~1663), 나재(懶齋) 신열도(申悅道, 1589~1659), 인재(忍齋) 신채(申埰, 1610~1672) 세 분이었다가 나중에 만오(晩悟) 신달도(申達道, 1576~1631)를 추배(追配)하였다.
신적도는 본관은 아주(鵝州), 자는 사립(士立), 호는 호계(虎溪)이다. 아버지는 흘(仡)이며,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함으로 학문과 효행이 뛰어났다. 1606년(선조 39) 진사에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상운도찰방(祥雲道察訪)에 제수되었고, 병자호란 때 건원릉참봉(建元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867년(고종 4)에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호계집(虎溪集)』이 전한다.
- 신달도(申達道): 1576(선조 9)~1631(인조 9). 본관은 아주, 자는 형보(亨甫)이며, 호는 만오(晩悟)이다. 아버지는 흘이며, 조목(趙穆)과 장현광의 문인이다. 1610년(광해군 2) 생원에 합격하였고, 1623년(인조 1)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척화론을 주장하다 파직되었다가 뒤에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만오집(晩悟集)』이 전한다.
- 신열도(申悅道): 1589(선조 22)~1659(효종 10). 본관은 아주, 자는 진보(晋甫), 호는 나재(懶齋)이다. 아버지는 흘이며, 장현광의 문인이다. 10세 때 경사(經史)를 통달하였고, 1624년(인조 2) 증광시(增廣試) 을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였다. 서장관(書狀官)·예조정랑(禮曹正郎)·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울진현감(蔚珍縣監)·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능주목사(綾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문소지(聞韶志)』를 펴냈으며, 문집으로 『나재집(懶齋集)』이 전한다.
- 신채(申埰): 1610(광해군 2)~1672(현종 13). 본관은 아주, 자는 자경(子卿)이고, 호는 인재(忍齋)이다. 아버지는 적도(適道)이며, 장현광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시(式年試)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유학하였다. 저서로는 『인재집(忍齋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구서원 영건전말丹邱書院營建顚末」, 『인재집(忍齋集)』 권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