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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明倫堂)

의성김씨 귀미 오우당공파義城金氏 龜尾 五友堂公派

61.0×117.0 / 해서(楷書)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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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명 명륜당(明倫堂)
  • 글자체 해서(楷書)
  • 크기 61.0×117.0
  • 건물명 명륜당(明倫堂)
  • 공간명 의성김씨 귀미 오우당공파(義城金氏 龜尾 五友堂公派)
  • 서예가
  • 위치정보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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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은 서원이나 향교 등의 강당 편액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편액은 의성김씨 귀미 오우당공파에서 기탁한 것으로, 편액의 크기는 가로 117㎝, 세로 61㎝이다. ‘명륜(明倫)’은 오륜(五倫)을 밝힌다는 뜻이다.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한다. 오륜은 오교(五敎)라도고 하는데, 순(舜)임금이 신하인 설(契)에게 “백성들이 친애하지 않고 오품이 순조롭게 행해지지 않는다. 그대를 사도의 관직에 임명하니, 그대는 오교를 공경히 시행하되 관대한 방향으로 펼치도록 하라[百姓不親 五品不遜 汝作司徒 敬敷五敎在寬]”라고 말한 내용이 『서경』 「순전(舜典)」에 나온다.

글씨는 작자 미상의 해서체이다.

후덕하고 윤기 있는 필획이 방정함을 만나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편안하게 다가오는 글씨이지만 사람의 도리를 설파하는 준엄함이 보인다.(서예가 遯石 양성주)

의성김씨 귀미 오우당공파(義城金氏 龜尾 五友堂公派) 소개



귀미리는 마을 뒷산이 거북의 꼬리 모양 같다고 해서 귀미(龜尾)라고 하였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구비라고도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에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 1579~1656)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귀미리 의성김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근의 부친 김안계(金安繼)는 당시 귀미리 일대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이중립(李中立)의 사위였는데, 이를 계기로 김근은 임진왜란이 끝난 1600년경 원래 살고 있던 청송 진보에서 김안계와 모친 월성이씨 그리고 아우인 손암(遜巖) 김원(金遠)과 함께 귀미리로 이주하였다. 김근의 6세손 귀와(龜窩) 김굉(金㙆, 1739~1816)이 크게 학문을 떨쳐 의성김씨 집성촌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였고, 조선 말기 영남의병을 일으킨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 1825~1912)도 가문을 크게 빛냈다.
참고문헌
  • 한국국학진흥원, 『의성김씨 귀미파문중』, 한국국학진흥원소장 국학자료목록집61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2』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http://www.ugy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