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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정(三龜亭)

안동김씨 소산종중安東金氏 小山宗中

84.0×179.5 / 해서(楷書)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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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명 삼구정(三龜亭)
  • 글자체 해서(楷書)
  • 크기 84.0×179.5
  • 건물명 삼구정(三龜亭)
  • 공간명 안동김씨 소산종중(安東金氏 小山宗中)
  • 서예가
  • 위치정보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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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정(三龜亭)

삼구정(三龜亭)



삼구정(三龜亭)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1리에 위치한 삼구정의 편액이다. 이 편액은 안동김씨 소산문중에서 기탁한 것으로, 편액의 크기는 가로 179.5㎝, 세로 84㎝이다. 삼구정이라 명명한 이유는 거북이처럼 생긴 세 바위 때문이다. ‘구(龜)’는 ‘귀’로도 발음되나 문중에서 지속적으로 삼구정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대로 따른다. 삼구정은 1496년(연산 2)에 지례현감 김영전(金永銓, 1439∼1522), 밀양부사 김영추(金永錘, 1443∼?), 영천군수 김영수(金永銖, 1446∼1502)가 홀로 계신 어머니 예천권씨(醴泉權氏, 1409〜1496)의 축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건립하였다. 당시 예천권씨는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권맹손(權孟孫)의 딸이며, 당시 88세의 고령이었다. 남편은 한성판관을 지낸 김계권(金係權)으로,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형이다. 예천권씨의 품행과 3형제의 효행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부인은 타고난 품성이 밝고 맑으며 가정의 가르침을 잘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판관공과 결혼하여 5남 6녀를 낳았다.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가르침에 모두 법도에 맞게 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비운(否運)을 당해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여생을 살게 되었다. 이후로 복록이 날로 늘어나 자제들이 뜰에 가득하였다. 세 아들이 나란히 수령이 되어 각자 그 고을의 풍부한 물산으로 봉양함에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보내어 입맛에 맞게 하였다. 때로는 가마로 대부인을 모시고 이 언덕에 올라 유상하며 어머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이 기문은 김극검(金克儉, 1439~1499)이 지은 것이다. 예천권씨는 열한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아들이 다섯이고, 딸이 여섯이다. 아들은 맏이가 학조대사이다. 학조대사의 법명은 등곡(燈谷)인데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을 간행하는 등 세조 때 많은 치적을 남겼다. 또 풍수지리에 남다른 안목이 있어 그의 부친 김계권의 장례를 치를 때 기존에 있던 역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까지 그곳을 고집하여 무덤을 쓴 장본이기도 하다. 둘째 영전은 앞에서 언급한 인물로 사헌부감찰과 용궁현감 등을 지냈으며, 삼구정 건립 시의 벼슬은 지례현감이었다. 셋째의 본명은 영균(永鈞, 1441〜?)인데, 임금의 휘를 피하여 쇠금 변을 생략하여 영균(永勻)으로 쓰고 있다. 넷째는 영추로, 수원부사를 지냈다. 앞에서 보듯이 삼구정 건립 시의 벼슬은 밀양부사였다. 다섯째는 영수로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삼구정 건립 시의 벼슬은 영천군수였다. 딸들은 류유(柳牖, 본관 진주), 이장생(李長生, 본관 성주), 정훈로(鄭勳老, 본관 청주), 한영(韓穎, 본관 평산), 김윤리(金允离), 권함(權瑊, 본관 안동)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글씨는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1499)이 쓴 해서체이다. 이종준의 자는 중균(仲鈞),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상우당(尙友堂)·태정일민(太庭逸民)·장육거사(藏六居士) 등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1497년(연산 3)에 일어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귀양 가는 도중 시를 지은 것이 왕을 비방했다 하여 국문을 받다가 죽었다.

큰 바위 하나와 그보다 작은 두 개의 바위를 보는 듯한 묵직한 필획의 ‘三’ 자로 시작한다. ‘龜’ 자는 빼꼼히 드러낸 머리와 굳건한 등껍질과 억센 발과 날렵한 꼬리를 가진 마치 살아 있는 거북을 보는 것 같다. ‘亭’ 자에서 사다리 모양이 아닌 ‘口’ 자로 처리한 것은 개방감을 더함이 아닐까.(서예가 遯石 양성주)

안동김씨 소산종중(安東金氏 小山宗中) 소개



삼구정(三龜亭)은 남쪽 정면이 너무 가팔라서 측면에 출입문을 내었는데, 출입문을 통해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세 바위가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바위가 거북 모양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정자의 명칭을 삼구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또 거북은 영물로 200년 이상의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김영수(金永銖) 형제들은 어머니의 축수를 기원하며 이곳에 정자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예천권씨(醴泉權氏, 1409〜1496)는 자식들의 소원과는 달리 정자가 완성된 지 3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향년 88세였다. 세 아들의 효심을 담아 건립된 삼구정은 1496년(연산 2) 창건 이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일부 화재를 당하여 1605년(선조 38)에 중수하였고, 또 1736년(영조 12)에 민응수(閔應洙)가 좌막(佐幕) 비겸으로 하여금 개수(改修)케 하였으며, 1823년(순조 23)에는 후손 김우순(金宇淳)이 보수하였고, 광복 후 무자년(1948)에는 후손 김상동(金相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구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로, 조선 초기의 정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방이 없이 사방이 트여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6칸 규모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도리가 5개인 오량가(五梁架)이다. 도리는 서까래와 기둥 사이에 길게 걸쳐 있는 나무로 원형과 방형(方形)이 주로 쓰인다. 원형은 굴도리, 방형은 납도리라고도 한다. 또한 삼구정은 건축물 구조의 일반적 형태인 초익공(初翼工) 양식의 팔작지붕이다. 익공이란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추가하고 보 아래에 보아지를 설치하여 기둥과 보 및 도리, 장혀, 창방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아지의 처마 쪽 끝을 소의 혀처럼 깎아 ‘쇠서’를 이룰 때 붙이는 이름이다. 초익공이란 주두와 쇠서가 1개라는 뜻이고, 주두와 쇠서가 2개인 경우를 이익공(二翼工) 양식이라고 한다. 안동에는 안동댐 주변으로 이건한 선성현객사(宣城縣客舍)가 대표적인 이익공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삼구정에는 4개의 기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허백정(虛白亭) 성현(成俔)의 기문과 후손 김신겸(金信謙, 1693〜1738)의 중수기만 걸려 있고, 나머지 2개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나머지 2개는 후손 김영한(金寗漢)의 중건기와 삼구정의 중수 과정을 기록한 삼구정기략(三龜亭記略)이다.

현재 삼구정에는 7개의 시판이 걸려 있다. 당시 안동부사였던 김극검이 서문과 함께 읊은 시판과 이요정(二樂亭) 신용개(申用漑, 1463〜1519)의 제삼구정(題三龜亭) 시판,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이 차운한 시판이 있다. 또 삼구정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김영수의 아들 삼당(三塘) 김영(金瑛, 1475∼1528)의 삼구정사시사(三龜亭四時詞),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등삼구정감회부시(登三龜亭感懷賦詩),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1561∼1637)과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삼구정팔영(三龜亭八詠) 시판이 있다. 삼구정팔영은 청음 김상헌이 제하고 상촌 신흠에 시를 청한 것으로, 이인기(李麟奇), 류근(柳根), 홍서봉(洪瑞鳳), 박동열(朴東說), 김류(金瑬), 윤훤(尹暄), 장유(張維), 신익성(申翊聖) 등의 시판도 있었다. 또한 장령(掌令) 김영수가 1473년(성종 4) 경주판관으로 재임할 때 인근 고을의 수령이었던 흥해군수 이수붕(李壽朋), 영천군수 김양완(金良琬), 경산현령 금휘(琴徽)와 함께 사우계(四友稧)를 맺고 시를 남긴 사우개제명도시(四友稧題名圖詩)가 있었다. 이외에도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아산현감을 지낸 초창(蕉窓) 김성후(金盛後), 한성좌윤을 지낸 강재(强齋) 김면행(金勉行), 현종조에 임천군수를 지낸 필운옹(弼雲翁) 김영행(金令行), 숙종조에 청주목사를 역임한 간옹(澗翁) 김이건(金履健), 정조조의 우의정을 지낸 일청(一靑) 김달순(金達淳), 안동부사 시절 영호루에 걸려 있는 ‘낙동상류영좌명루’ 여덟 글자를 쓴 화서(華棲) 김학순(金學淳), 순조조대사헌을 지낸 건옹(健翁) 김양순(金陽淳),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등 안동김씨 후손들의 시판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의 누정이야기 「삼구정」(황만기 씀)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1』
  • http://www.ugyo.net/